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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청 80년을 본다①/ 희비 엇갈린 ‘공주·대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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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청 80년을 본다①/ 희비 엇갈린 ‘공주·대전시대’
  • 충남도 우희창 미디어센터장
  • 승인 2012.10.10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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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패러다임을 바꾸는 60년생 배롱나무 이식

충남도 우희창 미디어센터장이 각종 기록물과 간접증언을 토대로 정리한 ‘충남도청 이전 역사’를 연재한다. 이 글은 충남도청 홈페이지 ‘충남넷’에도 동시 게재된다. <편집자 주>

▲ 충남도청의 현재 모습.
지난달 24일 오전 11시 대전시 중구 선화동에 자리한 충남도청에서는 의미 있는 한 행사가 치러지고 있었다. 이날은 충남도청이 내포 신도시로의 이전을 100일 앞둔 날이다. 도청 정문 옆에서 지난 60년간 충남도와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배롱나무의 이식 행사가 벌어진 것. 4.5m 높이에 가지 둘레가 28m에 달하는 이 배롱나무는 도청의 전통을 계승하는 상징 수로 6.25 전쟁 후 심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도는 이 행사에 앞서 권희태 정무부지사의 도청이전 사업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어 이준우 충남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전시민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현수막 제막식을 가졌다.

“80년 동안 따뜻이 품어주신 대전시민의 정, 마음깊이 간직하겠습니다. 2013년부터 내포신도시에서 충남이 새롭게 출발합니다.”

충남도는 지난 발자취를 뒤로하고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기 위한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서막

▲ 대전시민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현수막 제막식이 열렸다.
사실 대전의 역사는 충남도청의 이전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충남도청이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함으로써, 대전은 행정을 포함한 모든 충청인의 삶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단순히 도청건물이 옮겨온 것이 아니라 충남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꾼 일대 역사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제 100일 후면 충남도청은 대전의 시대를 마감하고 내포시대를 새로이 연다. 이 역시 단순히 도청 건물의 이전행위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충남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하는 일이다.

도청의 이전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29년. 제5대 야마나시 한조(山梨半造) 총독이 재임하던 시절이었다. 충남도지사는 친일파로 이름난 신석린(申錫麟)이었다. 야마나시는 군 재임 시 시베리아 원정군이 탈취한 황금을 횡령한 사건 등 다양한 부정혐의에 연루되면서 돈을 좋아하는 ‘배금장군(拜金將軍)’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는데, 실질적인 그의 임무는 당시 총리였던 다나카의 정치자금 조달이었다.

자금을 끌어모으는 데 혈안이 된 그에게 접근한 것은 대전지역 일인(日人) 실업인들이다. 1929년 3월 그들은 야마나시 총독을 대전으로 초대했다. 충남도를 시찰한다는 명목으로 공주, 논산을 거쳐 대전을 방문한 야마나시 총독을 대전의 실업인들은 열렬하고도 따뜻하게 환영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정치자금 10만 원을 모아 전달하면서 은밀하게 도청의 이전을 건의했다.

▲ 내포신도시로 옮겨갈 배롱나무.
▲ 배롱나무 이식작업 모습.
조선 경영의 편법 ‘도청 대전이전’

그러나 채 석 달도 되지 않아 1928년 중국에서 일어난 장쭤린(張作霖) 폭살 사건의 여파로 다나카 내각이 총사퇴하면서 야마나시 총독의 입지는 급격히 위축되었다. 그는 이 같은 불안한 정국에서도 충남도청을 대전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것을 하나의 총독부 시책으로 확정지었다. 그리고나서 그는 곧바로 부산 미두취인소(米豆取引所) 설립 허가를 둘러싸고 5만 원을 받은 ‘독직(瀆職)사건’에 연루되어 사임하였다.

일본으로 되돌아간 야마나시는 재판을 받았는데, 충남도청 유치를 위해 움직이던 대전 사람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파란을 일으켰다. 비록 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되었지만, 이는 공주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야마나시 총독의 후임으로 온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은 신석린 충남지사를 중추원 참의로 임명하고 강원도 참여관(현재의 부지사)인 유진순(劉鎭淳)을 충남지사로 발령냈다. 사이토는 이미 1919년부터 8년간 야마나시보다 먼저 조선 총독을 역임한 바 있었다. 그런 그가 다시 조선으로 부임해온 것이다.

그러나 사이토는 그해 12월 총독부 예산을 세우면서 충남도청 이전 예산 39만 5000원을 책정해 일반인들의 예상을 깨어 버렸다. 비록 실정한 전임자의 결정이라 하더라도 총독부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는 추진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당분간 비밀에 부쳐졌다.

1930년 1월 사이토 총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그 해 시책 방향을 설명한 뒤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을 공식 발표했다. 이전 계획이 공개되자 대전과 공주의 반응은 극과 극을 달렸다. 대전의 읍민들은 환호했지만 공주읍민들은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대전의 땅값은 두 세배 크게 뛰었지만 공주의 땅값은 폭락하기 시작했다.

공주지역 상점 철시 등 강경 저지

당장 공주의 반발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공주에 거주하는 조선인과 일인 거류민들이 손잡고 ‘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긴장감이 더해갔다. 이러한 가운데, 충남도청의 이전에 관한 의안이 1931년 3월 일본 제국회의(의회 하원)에 비밀리에 상정되었다. 그러나 이를 알아챈 공주의 반대투위에서는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대책을 세웠다. 대책위원회의 핵심간부 2명이 일본으로 몰래 건너가 제국회의의 통과를 저지키로 한 것이다.

형사들의 미행을 따돌리고 동경에 도착한 이들은 충남도청 이전 예산서를 복사해 대의사(代議士)들을 찾아다니며 예산안의 삭감을 설득했다. 이러한 설득작업에 따른 것인지는 몰라도 그해 3월 9일 열린 제59차 제국회의에서 충남도청 이전 안은 예산이 전액 삭감됨으로써 부결되고 말았다.

이러한 소식은 순식간에 조선으로 전해졌고 대전과 공주에서는 희비의 쌍곡선이 엇갈렸다. 대전에서는 의외의 사태에 놀라 땅값이 순식간에 폭락하고 대전토지주식회사를 중심으로 도청부지 등을 마련하려던 계획은 중단되고 말았다.

반면 공주에서는 축제의 분위기 속에 유흥가가 살아나고 땅값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가지 못했다. 사이토 총독은 귀족원(상원)에서 예산을 다시 회복시키기로 하고 일본 귀족출신 대전거류민 대표를 일본으로 보내 귀족들을 설득하도록 하는 한편, 충남도청 이전의 당위성을 담은 친서를 와카츠키 레이지로(若槻禮次郞) 수상에게 전달했다. 결국, 제국회의가 열린 지 한 달도 채 안 된 4월 귀족원의 제59차 본회의에서 충남도청 이전 예산안이 다시 부활함으로써 하원의 의결이 뒤집혔다.

엎치락뒤치락하자 공주에서는 모든 상점과 영업소의 철시를 결의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등 강경하게 대치했다.

금강철교 건설로 반대투쟁 무마

유진순 지사가 해임된 후 부임한 오카사키 지사는 계속되는 공주 읍민들의 분노를 무마시키기 위해 금강철교 건설과 공주교육도시 육성을 약속했다. 그러나 연일 도청이전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급기야는 공주경찰서 방화미수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이전으로 굳어져 있었다.

공주 반발의 무마책으로 제시된 금강대교의 건설이 1932년 1월 시작되었고 2년여의 공사 끝에 드디어 1933년 11월 개통식을 가졌다. 도청을 빼앗긴 대신에 얻은 이 다리를 공주 사람들은 ‘한(恨)의 다리’라 불렀다. 1896년(고종33) 충주에 있던 충청감영에서 분리되어 충청남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던 공주는 36년 만인 1932년 도청 소재지의 지위를 잃고 군 소재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편, 도청이전이 확정되면서 충남도는 부지를 매입하고 7월 15일 기공식을 가진 뒤 공사에 돌입했다. 이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돼 1932년 9월 새 도청건물이 완공되었다. 9월부터 도청은 공주로부터 짐을 옮기기 시작해 10월 1일까지 이전을 완료하고 당일 우카키 총독이 참석한 가운데, 도청사 앞에서 도청이전식을 성대히 열었다. 대전이 충청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등 새로운 역사의 장(章)을 연 충남도청의 대전이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충남도 우희창 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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