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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완구<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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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완구<전 국무총리>
  • 윤진아 서울주재기자
  • 승인 2018.09.25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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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6·13 지방선거 후 ‘보수 재건 역할론’과 함께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정치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이 전 총리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보수 스스로 통렬히 반성하고 하나로 뭉친다면 기회는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2일 대법원이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하면서 이 전 총리는 ‘비타 500 박스’로 상징되던 성완종 리스트의 굴레를 벗게 됐다. 굴레를 벗었지만 인터뷰는 한사코 사양했다. 그런 그가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충청대망론’의 주역이었던 그의 행보에 정치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결백을 주장하며 2만3000 페이지 분량의 재판기록까지 보여준 이 전 총리는 “경위가 어떻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몸을 낮췄다. 
<편집자 주>

 

대법원 무죄 확정 후 정치행보 재개
검찰총장 포함 수사검사 전원에 민·형사 소송
총선 출마, 대권 도전 질문에 “정치란 가능성이 내포된 예술” 선문답
충청대망론, 홍성·예산 발전 기대에 “응답할 날 있을 것”

-첫 질문은 역시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비타 500 박스’가 될 듯합니다. 2016년 1월 15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9월 27일 2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작년 12월 22일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죠.
▲재판 과정에서 ‘비타 500 박스’가 거짓말로 밝혀졌습니다. 총리직 사퇴에 결정적 계기가 되고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입힌 그 발언에 대해, 성완종 비서진은 검찰 진술조서와 재판에서 언론이 오보를 낸 것이라고 진술했어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했지만 지금도 ‘돈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이 억울함을 어떻게 입증할까요? 저는 철저히 자기관리를 해온 사람이에요. 큰 뜻이 있었기에, 늘 평균 이상의 도덕성을 견지했어요. 두 아들 모두 비밀장가 보냈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조의금을 일절 안 받았습니다. 장인 장모 부고에도 제 이름을 빼게 했어요. 혹시 모를 의심의 씨앗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결정이었죠. 합법적인 정치후원금이라도 쪼개기 의심이 있거나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후원금은 다 돌려줬고요. 공직에 있으면서 결벽증에 가깝게 자기관리를 해왔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 자택에 보관 중인 2만3천여 페이지의 재판기록.

-‘비타 500 박스’로 3000만 원을 받았다고 첫 보도한 경향신문 사회부장과 편집국장, 수사를 맡았던 검찰총장과 수사팀 검사 전원을 민·형사 고소했거나 소송을 제기했다고요.
▲대개 정치인들은 무죄 판결을 받고 나면 사건이 잊히길 바라지만, 저는 반드시 들추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2만3000 페이지에 달하는 재판기록 전부를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모든 법조인에게 배포할 겁니다. 사실 어떤 정치인이 검찰총장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벌이겠어요? 그 고통스러운 법정투쟁을 왜 제 손으로 시작하겠어요? 국가의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사법정의가 바로 서기를 바라는 책임감으로 하는 일입니다. 승소한다면 소송비용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할 생각입니다.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한 것도, 2009년 세종시 원안 추진을 위해 충남도지사직을 던져버린 것도, 2003년 행정수도건설 특별법 통과에 국회의원직을 건 것도,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용단을 내리지 못했다면 누가 나를 믿어줬겠어요.

-지난 3월 장곡면 옥계리의 선산을 찾은 데 대해, 칩거를 끝내고 정치활동을 재개하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많았습니다.
▲무죄 판결로 억울함을 벗었기에 10년 만에 고향을 방문했습니다. 1996년 국회의원 선거 공약이 충남도청 유치였고, 2006년 도지사가 되어 내 손으로 홍성에 도청을 건설했어요. 도지사로 재임하면서 도청이전특별법 제정, 국방대 논산 이전, 백제역사재현단지 민자 유치, 외자 유치 전국 1위 등등 충남의 위상을 높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냈습니다. 홍성 남부 외곽도로 재정비, 도립병원 현대화도 제가 필사적으로 추진한 일이었죠. 그런데 10년 만에 돌아본 홍성이 기대만큼 발전했는가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구상한 청사진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정체된 홍성의 모습에 속상했던 게 사실이에요. 제가 그때 도지사직을 사퇴한 데 대해 원망하는 민심도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안희정 전 지사의 탄생을 도운 셈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어요.

-지난 6·13지방선거 당시 한국당 후보들의 지원 유세에 적극 나섰는데요. 특히 1박 2일간 홍성·예산 유세에 집중하면서, 일각에서는 21대 총선 출마를 통한 대권 도전 로드맵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지원 유세를 위해 전국 50여 곳을 다녔어요. 저를 키워주고 지지해준 원동력인 홍성은 특히 곳곳을 돌며 주민들과 대면했죠. 예산 지역을 돌 땐 일반 명함보다 조금 큰 명함을 만들어 군민들에게 건넸습니다. 당시 저를 견제했던 당내 일부 움직임에 대해 쓴소리할 게 많지만, 이쯤에서 말을 아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건강은 괜찮은 건가요?
▲지방선거 당시 20일간 전국을 도는 강행군을 이어갔어요. 아프면 이렇게 못하죠. 모르긴 몰라도 활동량과 운동량으로는 당내 1위가 아닐까 합니다.(웃음)

-이해찬 민주당 당대표 등 여야 ‘올드보이’들이 속속 귀환하면서, 경륜·협치에 대한 기대감과 세대교체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습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 모두 70대이지만 ‘올드 걸’, ‘올드 보이’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저는 2년 뒤 21대 총선이 돼도 아직 60대이지만요.(웃음) 또, 세대교체란 정책 내용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지, 나이로만 하는 것은 아니죠. 연륜과 경륜은 서로 적절하게 조화가 돼야 합니다. 정치의 복잡다단한 메커니즘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일이 꽤 걸립니다. 정치를 개혁하려면 국회가 돌아가는 것을 속속들이 알고 전체를 꿰뚫어보고 진단과 처방을 내놓아야 하죠.

-보수 재기를 맡아줄 ‘이완구 역할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도 맥을 같이하는 듯합니다.
▲국민이 새 리더십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으니 보수의 노선, 개념, 가치 등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거쳐 보수를 담을 담론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경제·민생·개혁·규제완화를 통해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신경 쓰지 않으면 조만간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고언을 해주고 싶어요. 국민적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때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어가려면,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원내대표를 할 땐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실에 가서 함께 자장면을 들면서 협상했어요. 우윤근 원내대표(현 주러시아대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요. 정치란 서로 싸우더라도 신뢰와 협력 속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충남지사, 3선 국회의원, 여당 원내대표, 국무총리를 역임한 유력 정치인이자 충청대망론의 구심이었던 이 전 총리가 칩거를 풀면서, 21대 총선 출마와 대권 도전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정치를 여러 가지로 정의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정치란 가능성과 상상력을 내포한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로서는 모든 것을 여백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다만, 충청인에게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충청대망론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만큼은 이 자리에서 약속드립니다.

-끝으로, 홍성 군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의 이완구가 있게 해준 원동력은 홍성입니다. 저는 광천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홍성에서 공직생활과 국회의원을 지낸 홍성 사람입니다. 저의 본관은 여주이씨(驪州李氏) 홍주파(洪州派)로, 500여 년 전 홍동면에 정착한 종친들이 지금도 장곡면과 청양 비봉면 일대에 산재해 살고 있습니다. 홍성과 청양에서 8년 동안 국회의원으로 일하면서 515개 자연마을을 매년 한 차례씩 여덟 번, 모두 4000번 방문했어요. 한 마을도 빼놓지 않았죠. 저를 이만큼 키워주고 지지해주신 군민들의 믿음에 보답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을 대신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묻습니다. 정말 안 받은 거죠?
▲그걸 받았다면 저 방대한 재판기록을 쌓아놓고 수십 명의 현직 검찰, 언론인에게 민·형사 책임을 묻는 고달픈 싸움을 하겠어요? 분명하게, 제 목숨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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